차은일 목사 2004-07-19 00:07:42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 다니는 아들 준이가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점심 시간에 들고 있던 피자를 땅바닥에 던져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로 모두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아이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회초리로 5대를 아프게 때리거나 하루종일 TV를 보지 못하게 하는 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준이를 불러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보라고 말을 했는데, 그의 첫마디에 약간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그 일에 대하여 지금 정말로 후회를 한다(I regret…..)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의 내용인즉 몇 일 전부터 자기를 괴롭혀 오던 아이가 그 날도 같이 앉아서 식사하고 싶은 좋은 아이 옆에 앉지 못하게 방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저는 준이의 진지한 표정에서 자기의 행동이 정말 나빴다는 것에 대한 후회함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조건 한 가지를 추가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자비로운 조건이며 동시에 무서운 조건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TV를 보지 못하고 회초리로 5대를 때린다는 가중된 처벌조건이었습니다. 아이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더니 3번째 조건을 선택하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기도를 하고 그 사건을 종결지었습니다.
기분전환을 위해 준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하고 나가는데 아이가 제게 엉뚱한 말을 건넸습니다. “아빠! 하나님도 우리에게 벌 주시는 것을 좋아하시지는 않으시지요?”
저는 준이의 말을 들으면서 뭉클한 감동이 왔습니다. 제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정해 준 자비의 조건이 제 아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해 주었구나 하는 감동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약간 엄한 편이라는 생각에, 특히 큰 아이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치 않은 중이었기에 더욱 기뻤습니다.
이 사건을 보며 하나님의 자비하심, 용서하심, 사랑하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사인 저 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짓는 죄들이 많은데 만약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참으심이 없으셨다면 난 지금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수준에서의 거룩함과 공의의 기준이라면 이 세상 어떤 인생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호흡할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정말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는데도 난 나에게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허물이 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분해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난 이미 일만달란트의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는데도 백데나리온의 용서에 대해서도 인색해 하는 그런 작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정말 그 크신 사랑을 느끼면서 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좋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