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일
어느날 K-Mart를 갔다가 좁은 복도에서 어느 한인 남자분과 부딪칠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놀래고 상대방도 순간적으로 무척이나 놀랬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주춤거림도 없이 저와 그 사람은, 서로 빗기며 지나갔습니다. 단지 한인으로서의 눈빛만을 순간적으로 교환한 체 말입니다. (그 순간의 순발력이란 두 사람 다 대단한 운동신경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때 불연 듯 스쳤던 실망감과 후회감이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옛 말에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고 그러셨는데, 먼 이국 땅 외딴 지역 산타바바라, 그것도 K-Mart 안에서 그 시간 그 순간 그 곳에서 그 신사분과 그렇게 부딪힐 뻔 했는데 목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벌써 미국에 온지 10년이 가까워 오면서 너무 개인주의에 길들여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서로 인사하면 피곤해 질 테니까 그냥 모른체 하자! 그러면 다 편안한데… 저의 안이한 생각이 어쩌면 한 영혼이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갈급해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내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마음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나의 정서가, 나의 마음이 너무 메말라 가고 있지는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민생활이 원래 바뻐서 그럴거야! 라고 자위하여 보지만, 가슴 깊은 속에서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메말라 가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경고하시는 듯 합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다른 한인들을 바라 보면서 그 분들의 눈빛 역시도 많이 지쳐있고 메말라져 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심리학적 방어기재 중 하나인 투사(Projection)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메마른 마음으로 지난 주 부활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축하하는 주일이었습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뜻 깊은 날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제게는 지난 주 부활주일이 그 어떤 날보다도 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마치 메말라져 가는 나의 가슴에 단비를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부활주일이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던 예수님의 시신에 영혼이 돌아오고 심장이 다시 박동치기 시작하셨던 회복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특별이 새벽 미명에 산타바바라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연합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연합예배를 드렸다 하는 것은 부활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신앙을 고백하며 한 주님을 섬기는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뜻 깊은 순간이였습니다. 이 연합예배는 산타바바라 지역의 흩어져 있는 성도들과 교회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지는 참으로 귀한 순간이였으며 동시에 타인을 향해 메말라져 가는 우리의 심장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시 한번 힘차고 풍성하게 박동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가지며 꿈을 꿉니다.
부활주일을 지낸 제 자신과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에 회복의 영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마음들이 하나가 되고,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져가는 냉랭한 심령에 회복의 온풍이 불게 하옵소서. 그래서 만나면 서로 인사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그런 가족 같은 지역 산타바바라, 사랑이 넘치는 산타바바라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