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6 10:03:31 212
빠르게 세월이 지나갑니다. 미국을 다녀온지도 어느새 2주째가 되어 갑니다. 정확하게는 라스베가스에서 학회가 있어 LA를 거쳐 5일간 출장을 다녀 왔습니다. 어떻게든 산타바바라를 들러 인사도 드리고 싶었으나 국내의 일정과 미국의 일정이 약간의 틈도 허락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LA-라스베가스 사이의 비행기에서 저곳이 산타바바라쯤 되겠구나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나갔습니다.
해가 갈수록 육체가 낡아가는 것인지 (아이구, 죄송합니다, 권사님 ~~) 이번에는 시차 적응이 별로 되지 않았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말입니다. 침대에서 그저 앉아서 지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첫날 밤부터 말입니다. 잠이 쏵 달아난 것은 라스베가스의 현란한 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LA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요. 아무런 테러 소식 없이 말입니다. 갈아타는 비행기도 약간의 지연 끝에 라스베가스에 무사히 도착했고, 제 수하물은 모조리 정확히 도착했습니다. 비교적 저렴한 호텔 체크인을 하고는 오프닝 리셉션 때문에 학회장엘 갔습니다. 1년만에 만나는 미국 교수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저녁 무렵 호텔에 들어 왔습니다. 집을 떠난지 무려 24시간이 넘었지요. 눈은 말똥 말똥하나 몸은 약간 지치고, 마음도 밤에 맞추어서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세수하고 잠자기 전에 한국에 무사 도착 소식을 전화로 잠깐 알리며 굿나잇을 하는 순간 아주 조그마한 벌레가 머리맡의 벽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전화 끝나고 휴지로 간단히 압사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종류와는 그 동작이 다른 것이 아주 빠르게 점핑을 하는 종류였습니다. 귀뚜라미 아기 정도로만 생각했으나 3차례나 저의 손놀림을 피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커다란 종이를 동원해서 사방팔방으로 포위하면서 겨우 체포하였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잠을 청하려 했으나 시차를 고려할 때 한국은 이미 아침 밥 먹는 시간. 배도 고프고, 정신은 번쩍 들어 있고, CNN은 재미있는 뉴스가 많고…그렇게 첫날밤은 잠 없이 자나갔습니다. 낮시간에는 다시 미국인이 되어 또 졸리지도 않은채로 학회를 참석했지요.
그날 저녁, 밖에서 식사를 마치고는 저렴한 호텔로 다시 돌아오는 신호등에서 우연히 보게된 간판에는 어젯밤 목격한 그 벌레의 초상화가 크게 그려져 있었고, termite and pest control 광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설마하면서 청소가 된 그 방을 들어서고는 침대 시트부터 쫙 펼셔서 깨끗함을 확인하였습니다. 침대 머리의 불을 켜고는 세수하고 돌아오면서 졸음을 생각하려던 순간 기절할 뻔 했습니다. 어제보다 더 큰 그 벌레가 이제는 침대 시트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어제와 마찬가지로 불을 켜니까 침대 밑에서 나온 것이로구나 소스라치게 놀란 저는 압사시킬 도구를 찾으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벌레는 순식간에 점핑을 하여 베개를 지나 침대 옆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미 자정이 다가온 그 시간에 저는 또 잠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짐을 싸기 시작하였고, 오늘은 안되겠다는 생각 속에 로비로 가서 벌레의 이틀 연속 출현을 언급하고, 이름은 모르지만 점핑이 아주 빨랐다는 것을 설명하며 방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녁에 봐둔 광고 그림이 생각나서 termite인지도 모르겠다고만 했지요). 디카로 사진이라도 찍어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호텔 매니저는 더 비싼 등급의 방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새 방은 다른 건물에 있었으므로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래도 머리맡의 불을 켜고는 한동안 출현 여부를 관찰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둘째날 밤도 한국의 아침시간으로 되어 버렸고, 잠은 어느새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음날 낮에는 다시 미국시간으로 생활하였고, 세째날은 벌레도 없었으나 넷째 날 새벽에 있을 Geoloy Field Trip 때문에 자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그 다음날은 LA 행 비행기 탑승 관계로 새벽에 일어나야 했고, 이번 라스베가스 출장 기간에는 이런 사연 끝에 5일동안 총 5시간도 자지 않게 되었습니다.
귀국후 잠은 쏟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귀국후 오히려 미국시간의 영향인지 새벽에 깨어나서 멀뚱 멀뚱 앉았다가 다시 비몽사몽 뒤척이다가는 새벽 산책을 나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건강한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벌레의 정체는 모르겠습니다. 산타바바라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벌레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매니저의 얼굴만 기억날 따름입니다.
그런 벌레 없는 산타바바라 여전히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박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