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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기도로 기어갑시다.(샬롬지10월호)

차은일목사
어느 추운 날, 달팽이가 사과나무를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느린 속도로 조금씩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을 때 나무껍질 틈새에서 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달팽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쩜 그렇게 미련하니? 그런 느린 속도로 기어 오른다고 뭐가 있겠니? 저 위에는 사과가 하나도 없단 말이야. 그러자 달팽이가 계속 기어오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저 꼭대기에 도달할 때쯤이면 사과가 열릴 거야.

지금 두고 온 조국의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보면 목이 메이고 가슴이 답답하여 밤 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일련의 악한 세력들이 양극단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국민들의 생각을 양분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다 기독교 지도자들 조차도 단체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한기총 대로, 원로 목사 30인은 그들대로 한 쪽은 반대하고 한 쪽은 찬성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국가와 민족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시는 충정이요 헌신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피멍이 드는 사람들은 힘 없는 국민이요 교인들일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입장을 서느냐에 따라서 목사들 조차도 동지가 아니면 적으로 간주되는 무서운 이데올로기의 전쟁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멀리 이국 땅에 살고 있는 목회자로서 정확히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한 입장을 취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나의 정치적 소신을 맡기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에 손을 들기에는 지금 우리 민족의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선까지 맞물려 있는 세계구도 속에서 누가 100%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이런 혼란한 시대에는 한 사람이 더 입을 벌려 말한다면 그 만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더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은 어떨런지요? 각자가 품은 정치적 소신은 다를 수 있지만 목사이기 때문에 성도이기 때문에 좀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을 택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바닥에 엎드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세대에 관계 없이 정치적인 입장차이를 불문하고 함께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은 어떨런지요? 지금은 입을 벌려 내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라 지금은 어리석어 보일 만큼 골방에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입니다. 한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말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추운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봄이 올 것인가 의심하며 절망 속에 절규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닥에 엎드려 기도로서 기어갑시다.눈물로 기어 가노라면 풍성한 열매를 따 먹을 날을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방법이 힘든 시대라면 하나님의 방법에 메달려 봅시다. 비록 어리석어 보여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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